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자와 이치로 (문단 편집) === [[신진당]] 및 자유당 창당 === 이후 오자와는 자신의 주도로 공산당을 제외한 모든 야당을 통합해서 [[신진당]]이라는 정당을 만든다. 신진당은 재편된 [[소선거구제]] + [[비례대표제]] 하에서 정권교체가 가능한 '양대정당'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결성된 것으로서, 당수는 [[가이후 도시키]], 간사장은 [[오자와 이치로]]가 맡았다. [[1995년]] 7월에는 참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 의석으로 자민당보다 앞서기도 하는 등 40석으로 선전하면서, 자민당을 상대로 정권교체를 노리게 된다.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[[1995년]] 12월 [[가이후 도시키]] 당수의 임기만료로 진행된 당수선거에서 출마하였으나, 25년간의 동지라고 할 수 있는 [[하타 쓰토무]]와 맞붙게 된다. 개표 결과 오자와 이치로가 승리함으로써 오자와 이치로가 당수가 되었으나 이후 [[하타 쓰토무]]와 심한 갈등을 겪게 된다.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6px -10px" [[파일:굳은 표정의 오자와 이치로.jpg|width=100%]]}}} || || {{{#fff '''선거 패배로 인해 굳은 표정으로 기자회견에 응하는 오자와 이치로'''}}} || 그런데 정권교체를 노렸던 [[1996년]] [[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]]에서 구 사회당 지지층 흡수에 실패하여 156석을 확보하는 부진을 거두자 비주류 의원들이 대거 탈당하는등 위기에 빠졌다. 오자와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자민당과 연정을 시도했으나 이는 당내에서 거세게 반발을 샀고 결국 [[1997년]] 12월에 신진당을 해산했다. [[1998년]]에 자유당을 창당했다. 하지만 자유당은 [[민주당(일본 1998년)|일본 민주당]]에 밀려 원내 3당으로 전락했고, 지지율도 높지 않았다. 다만 1998년 [[참의원 의원 통상선거]]에서 6석의 의석을 거두며 생각보다는 좋은성적이라는 평은 받았다. [[간 나오토]]를 총리 후보로 내세웠으나 자민당이 중의원 다수의석을 차지했던고로 [[오부치 게이조]]가 총리로 등극했다. 이후 오자와는 자민당과의 연립정부를 구성했지만 후보 단일화에 대한 의견 차와 공명당의 연정 참여로 연정에서 자유당의 지분이 좁아지자 오자와가 연정탈퇴를 표명하며 연정이 깨지게 되었고,[* 이는 그 동안 [[과로]]에 쩔어 있던 [[오부치 게이조]] 총리에게 결정타를 날린 셈이 되어 오부치는 그 다음날 쓰러지는데, 그 길로 '''다시 깨어나지 못하고 [[과로사|사망]]'''하고 만다.] 이후 자민당은 [[공명당]]과의 연립정부 구성에 합의를 하게 된다. 이 때 연정잔류를 지지하던 의원 26명은 보수당이라는 정당을 구성했다. 다행히 이들은 [[2000년]] 중의원 의원 총선에서 참패하고 반대로 자유당은 22석의 의석을 확보하며 선전했다. 자유당은 다시 [[2001년]] 참의원 선거에서 부진하면서 오자와는 민주당과의 합당논의를 진행했고, 결국 2003년에 자유당이 민주당에 합류하는 식으로 통합되었고(민유합병) 오자와 이치로는 민주당의 당대행이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